오른 날: 2021. 3. 31 (수)
오른 산: 수락산 (서울 노원구)
등산로: 수락산역~4등산로~정상~석림사~장암역
날씨: 맑음
높이: 해발 637m
산행 시간: 3시간 50분 (11:50~15:40)
휴식 시간: 15분
난이도: ★★★★ (난이도가 쉽다는 4 등산로로 올랐지만 중간에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안 해도 될 고생을 했다)
전경: ★★★ (조망은 좋은데 미세먼지가 심했다)
만족도: ★★★★
주차비: 수락산역 공영주차장 5분당 170원
입장료: 없음
등산 초보인 저는 산에 가기 전에 먼저 검색해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산에 있는 등산로 중에서 '초보 코스'가 어딘지 찾아보고, 또 하나는 '무료 주차'를 할 수 있는 곳을 확인합니다.
검색하다가 수락산 1 등산로의 기차바위를 보는 순간 기가 눌려버렸습니다. 비탈진 큰 바위를 줄 하나에 의지해서 올라야 하는데 저는 등산 초보라 보기만 해도 어지러웠어요. 그래서 1 등산로는 바로 포기했습니다(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기차바위 우회로가 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그쪽으로 가도 될뻔했어요). 3 등산로의 깔딱 고개도 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구간이 있어 무사히 지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때 이미 수락산이 만만한 산이 아닐 거라는 느낌이 팍 왔습니다.
1시간 이상 검색한 끝에 그나마 쉬워 보이는 4 등산로를 선택했습니다. 주차는 무료로 주차할 수 있는 곳이 마땅히 없는 것 같아 수락산역 공영주차장에 세우기로 했습니다(하지만 산을 내려올 때 보니 석림사 앞에 무료로 주차한 듯 보이는 등산객들이 몇몇 보였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댄 시각은 11시 반이었습니다. 수락산에 오르내리는 데 4시간은 잡아야 한다는 글을 본 터라, 호야 어린이집 하원 시간까지 맞출 수 있을지 시작부터 불안했어요. 산행을 3시간 반 만에 끝내야 픽업 시간에 맞출 수 있었거든요. 빨리 올라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등산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등산 초보인 제가 빨리 올라갈 수 있을 턱이 없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오기를 부렸던 것 같습니다.
'수락산역 공영주차장'과 '지하철 수락산역 1번 출구', 그리고 '수락산 3 등산로'는 같은 쪽에 있습니다. 평일인데도 제법 많은 등산객들이 줄줄이 올라가는 게 보였습니다. 4 등산로는 지하철 3번 출구 쪽이라 저는 그쪽으로 돌아갔습니다. 등산로 입구까지 걷는 데 20분 정도 걸렸습니다(참고로 4 등산로 입구 쪽에는 '노원골 디자인 서울 거리 공영주차장'이 있습니다. 월~토는 5분당 150원, 일요일은 무료입니다. 저는 미처 몰라서 이용하지 못했지만 4 등산로를 이용하실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4 등산로는 비교적 인적이 드물었습니다. 산 입구 쪽이 서울 둘레길이라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훨씬 많이 보였어요.
등산로는 처음부터 경사가 있는 편이라,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도시가 발아래 펼쳐질 만큼 조망이 좋았습니다. 물론 그만큼 경사가 심한 길을 오르느라 시작부터 숨이 차기도 했지만요.
산행을 시작한 지 1시간이 조금 넘었을 무렵, 제가 서있는 맞은편으로 산 하나가 더 있었는데, 그곳이 수락산 정상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호야 하원 시간 때문에 열심히 산을 오르고 있었는데 정상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다는 생각이 들어 도로 내려가야 하나 고민이 됐어요. 결과적으로는 끝까지 걸었고, 그때부터 정상까지 1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한동안 나무 사이로 좁고 평탄한 길을 보여주던 산은 그때부터 돌변해, 큰 바위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가파른 오르막 길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위기가 찾아왔어요.
아마 정해진 등산로를 따라 올라갔다면 무리 없이 오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가 중간에 길을 잘못 들었더라고요. 산을 오를 때 다른 등산객 분들을 따라 걸었는데, 4 등산로와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던 분들이었어요. 그들은 익스트림을 즐기러 온 분들이라 험한 길(길이 아닌 길^^;)로 걷고 있었고, 전 그것도 모르고 그들을 따라 다른 길로 새는 바람에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가방에 클라이밍 장비를 잔뜩 달고 헬멧까지 든 등산객들을 보면서도, 그들이 다른 길로 갈 거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아파트 2층 높이 정도 되는 바위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 같은 등산 초보가 혼자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어요. 바위에는 도무지 발 디딜 틈이 보이지 않았어요. 다행히 지나가시던 등산객 분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두 분은 아래로 먼저 내려가서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하는지 알려주셨고, 한 분은 위에서 손을 잡아주셨어요. 그렇게까지 도움을 받았는데도 바위에 붙어서 쩔쩔매며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엉덩이를 붙이고 내려가려는 제게 몸을 돌려서 뒤로 내려오라고 하셨는데 몸을 돌리는 데만도 한세월이 걸렸어요. 발을 디뎌야 하는 홈의 폭이 발가락을 걸칠 정도밖에 안 되는 곳이라, 다른 발을 옮기는 사이 미끄러질까 봐 겁이 났어요. 한동안 바위에 붙은 채 '아이고 나 죽었네' 했습니다. 미끄러지면 무릎이 나가던가 턱이 나가던가 둘 중 하나는 나갈 것 같았어요. 아마 그분들이 없었다면 바위에 매달려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한 채 꼼짝없이 울기만 했을 것 같습니다.
민폐만 잔뜩 끼친 제게 그분들은 물도 건네주시고 오이며 무, 계란, 사탕 같은 먹을거리들을 잔뜩 주셨습니다. 왜 등산로가 아니라 이쪽으로 왔냐고 하셔서 길을 잘못 든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시간이 이미 2시에 가까워진 터라 그냥 산을 내려가려는 제게 그분들은 곧 정상이라며 정상까지 오르는 내내 도움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염치없다고 느끼면서도 그 도움을 넙죽넙죽 받으며 올랐습니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는 2시 20분이었어요.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쉴 틈도 없이 인증 사진만 찍고 바로 내려왔습니다. 정상석 옆에서 음료 등을 파는 분이 있어서, 도움 주신 분들께 음료수 몇 캔이나마 변변찮은 사례를 했습니다. 저도 0.5리터짜리 물을 사서 단숨에 비웠습니다.
도움을 주셨던 등산객 분 중에 한 분이 산을 내려갈 땐 석림사 쪽으로 가는 게 제일 빠르다고 알려주셔서 내려올 땐 그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석림사 쪽은 장암역이 있는 쪽이라서 제가 차를 주차해뒀던 곳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고 가야 했지만, 40분이면 내려갈 수 있다는 그분의 말에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었습니다.
제일 빠른 길답게 내리막이 꽤 가팔라서 걸음을 빨리 딛기가 어려웠습니다(결국 제 걸음으로는 40분이 아니라 1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내리막 중간쯤부터는 계곡 옆으로 난 길을 걸었는데요, 납작하게 찌그러트려서 주머니에 넣어놨던 페트병을 다시 펴서 계곡물을 담아 벌컥벌컥 마시기도 했습니다. 몸에서는 땀냄새가 진동했고 여기저기 두드려 맞은 듯 몸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어린이집에는 하원 시간보다 1시간 반이나 늦게 도착했습니다. 호야는 다행히 엄마가 늦게 온 줄도 모르고 평상시처럼 웃으면서 종종종 뛰어나왔어요. 그 모습에 한시름 놨지만, 당분간은 산행을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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