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 / / 2023. 3. 3. 17:42

관악산, 돌 밟는 재미가 있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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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 날: 2021. 3. 19 (금)
오른 산: 관악산(경기도 과천시)
등산로: 서울대 ~ 연주대 (원점회귀)
날씨: 맑음
높이: 해발 629m
소요 시간: 2시간 45분 (10:30~13:15)
휴식 시간: 15분
난이도: ★★★
전경: ★★★
만족도: ★★★
주차비: 서울대 주차비 (최초 30분 1500원/초과 10분마다 500원)
입장료: 무료

 

네 번째 산행만에 등산화를 사게 됐습니다(^^;). 이렇게 해서 등산 장갑 달랑 하나였던 등산 아이템 목록에 등산화가 추가됐어요. 업그레이드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다음 아이템은 등산 스틱이 될 것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뭔가가 꼭 필요해야 구입하는 성격이다 보니... 아직까지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건 산의 쓴 맛을 덜 봤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어요.

 

며칠 동안 등산화를 신발장에 고이 모셔놓고 관악산에 갈 기회를 엿봤습니다. 다음에 오를 산은 고민도 없이 관악산이었어요. 블랙야크 100대 명산 중에서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두 번째로 가까운 산인데도 불구하고 돌이 많아서 등산화를 사면 가려고 벼르고 있었거든요.

 

호야가 어린이집에 입소한 지 한 달 쯤 됐을 때라 처음으로 호야가 어린이집에 가있는 동안 등산을 갔어요. 어린이집에서 갑자기 무슨 일이 있을까 봐 불안하긴 했지만 본가와 시가가 모두 집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과감히(?) 산행을 단행했습니다. 혹시 갑자기 호야를 데리러 갈 일이 생겨도 부탁할 곳이 있었으니까요. 날씨 좋은 금요일. 호야의 등원 준비를 하면서 산에 갈 채비도 같이 했습니다. 채비라고 해봤자 등산장갑과 등산화, 그리고 차에서 마실 커피와 든든하게 충전된 핸드폰을 챙기는 것이 전부였지만요(^^).

 

호야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내비게이션 어플에 서울대를 도착지로 설정했습니다. 관악산의 등산로 중 서울대에서 시작하는 등산 코스로 가기 위해서였어요. 1시간에 3000원 정도 하는 주차비가 부담되긴 했지만(세상에서 제일 아까운 게 주차비인 것 같아요) 최단코스라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그곳으로 결정했습니다. 관악산은 어느 등산로든 딱히 무료주차를 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것 같아서 어차피 주차비를 낼 바에야 최단코스로 가겠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대신 관악산까지 가는 길은 통행료를 내지 않는 무료도로를 이용하는 것으로 마음의 안정을 얻었습니다(^^;).

등산로는 서울대 캠퍼스 안에서 시작됩니다.

서울대에서 시작하는 관악산 등산로는 건설환경종합연구소(316번 건물) 맞은편에 있습니다. 서울대 정문을 지나 언덕 위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됩니다. 건설환경종합연구소 근처에 있는 방문객 주차장(301번 건물 옆)에 차를 대고 5분 남짓 걸으면 등산로 입구가 보여요. 산을 오르기 전에 화장실은 미리 들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산 입구에 간이 화장실이 있는데 푸세식 화장실입니다(정말 오랜만에 푸세식 화장실을 봤네요). 

 

초입에 있는 이정표에는 정상인 연주대까지 2km, 85분이 걸린다고 쓰여있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이곳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데 70분이 걸렸습니다. 순간 '알고 보면 나도 산을 아주 못 오르는 등산 초보는 아닌 건가!' 생각하며 살짝 으쓱했는데요,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등산 초보라는 증거였던 것 같아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오르는 길.

등산로는 절반 정도는 계곡 옆쪽으로 난 돌길이고, 절반은 나무 계단으로 되어있습니다. 특히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돌을 밟고 오르는 길이 썩 재미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신나서 껑충껑충 뛰면서 산을 올랐어요. 중간부터는 나무계단이었는데, 나무계단은 안전하게 오를 수 있고 편하긴 하지만 지루해서 오히려 쉽게 지치는 것 같아요. 가끔씩 고개를 들어 보이는 산 아래 경치가 멋지면 그나마 기분이 나아질 텐데, 대기오염 때문에 뿌연 도심은 도리어 저를 울적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무계단을 다 올라 이제 정상인가 싶어 한껏 기대에 부풀어있는데 도저히 길로 볼 수 없는, 우뚝 솟은 바위 길이 마지막 난관처럼 눈앞에 떡하니 나타났습니다. 천마산 정상에서 주저앉았을 때처럼 이번에도 저는 맥을 못 추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어요. 발을 잘못 딛기라도 하면 바로 밑으로 떨어질 것 같아서 무서웠어요. 그런데 다른 등산객분들은 그 위를 줄줄이 가볍게 지나가시더라고요. 저는 너무 신기해서 무협지의 한 장면을 보듯 입을 떡 벌리고 그분들을 바라봤어요. 기어서라도 어떻게든 앞으로 가보려고 했지만 저는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지러워서 도저히 앞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등산 초보인 저에겐 너무 어려웠던 정상으로 가는 길.

좁은 바위 위에 앉아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지나가던 등산객 한 분이 제게 오시더니 옆에 우회할 수 있는 내리막 길이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이러다 관악산 정상에 못 가는 게 아닌가 근심에 싸여 있었는데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요.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경사가 급한 우회로로 내려갔습니다. 내려가서 보니 과천향교에서 올라오는 등산길과 만나더라고요. 그대로 쭉 걸어서 순조롭게 관악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최단 코스는 서울대에서 시작하는 길일지 몰라도 초보 등산러에게 좋은 코스는 과천향교에서 오르는 길인 것 같습니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주차비도 과천향교 쪽이 더 저렴했어요(1시간 1200원 / 1일 5000원)).

 

정상에 도착하기 직전에는 연주대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대가 있습니다. 기암절벽 위에 그림처럼 단아하게 자리한 연주대를 본 순간 그 아름다움에 넋이 나갔어요. 그 풍경 하나로 관악산에 오른 보람이 느껴지더라고요.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이 빚어낸 아름다움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느껴지는 전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연주대의 모습.
 

정상에는 아이스크림과 음료를 팔고 계신 분이 있어요. 저도 덕분에 메론맛 아이스크림 맛있게 먹을 수 있었어요. 가격이 좀 있긴 해도 정상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그 돈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어요. 산 정상에서 먹은 아이스크림은 꿀맛이었지만 희끄무레한 산 밑 풍경을 오래 감상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아 아이스크림만 먹고 바로 내려왔습니다. 대기오염에 잠긴 도시를 외면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산을 내려올 때는 조금 전에 포기했던 바위길 쪽으로 재도전했습니다. 울퉁불퉁한 바위를 집고 오르내리는 동안 에고에고 곡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나무계단길의 단조로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주저앉았던 바위 앞에서 바짝 긴장한 것도 잠시, 다행히 바위 위를 걷지 않더라도 옆쪽으로 튀어나온 돌을 밟고 지나갈 수 있어서 슬쩍 통과할 수 있었어요. 계단을 쫑쫑 내려오면 계곡물 소리가 다시 등산객들을 반겨줍니다. 돌 밟는 재미는 내리막에서 한층 더해졌어요. 가지런해 보이는 돌길이지만 똑같이 생긴 돌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발에 전해지는 느낌과 충격이 다 달랐고, 밟는 각도가 계속 바뀌면서 몸의 방향도 계속 바뀌었습니다. 걷는 속도도 큰 돌을 밟을 때는 느려졌다가 작은 돌은 밟을 때는 빨라졌다가 리듬을 탔습니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걸어 내려오는 사이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어요.

 

산행을 마치고 집 앞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반이었습니다. 호야 하원까지는 한 시간이 남아서 근처 짬뽕집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었어요. 하산 후에 먹는 식사는 역시 꿀맛이었습니다. 마치 산이 주는 선물처럼 뭘 먹어도 맛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맛있는 식사까지 마쳐야 비로소 산을 다 걸은 듯한 기분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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